자작 탁구채 (흑단 블레이드) 만들기-프롤로그

작년 이후로 목 때문에 그나마 간간히 하던 어떤 운동도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사량도 줄어가는데, 운동까지 못하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이러다간 조만간 각종 혈관질환에 노출되서 편치 못한 인생을 살겠구나 싶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 뛰어다니다가 목에 충격이 가거나 그런 것들이라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밥굶고 야근하다 배고파서 배회하는데,
학생 하나가 출출하시면 지금 탁구장 가면 모박사님이 피자 쏘시는거 먹을 수 있어요. 하는거다.
그래서 바로 달려갔지.
피자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에 학생과 잠깐 탁구를 쳐봤는데, 공동 잘맞고 재미있는거다.
학생이 원포인트로 지도해준 드라이브와 커트도 바로 먹히고.
탁구는 전에 쳤었지만, 한쪽 눈이 안보이게 된 이후로 거리감이 없어져서 공놀이는 무리. 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탁구는 공이 빨리 날아오고, 상대편의 자세를 본 후에 본능적으로 때리는거라 공을 끝까지 눈으로 쫓을 필요없이
감으로 때릴 수 있었다.
재미있어하며 계속 쳤는데, 불행히도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오던 분이 접촉사고가 나서 배달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왔던 탁구장에서 쓰레빠 차림으로 꽤 오랜 시간 탁구를 쳤다.
어 근데 땀이 베일정도로 한참 쳤는데도 목이나 몸에 무리가 안간다.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은거다.

근데 탁구를 치려면 라켓이 있어야지.
대학원 시절에 랩 옆에 바로 탁구장이 있어서 종종 쳤었고, 미국가기전엔 3주던가 잠깐 렛슨도 받았었는데...
난 항상 굴러다니던 라켓을 빌려서 쓰고 내 라켓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용도있는 물건을 갖고싶을 때의 내 나쁜 버릇이 나왔다.
뭐냐면 반칙이 아닌 범위내에서 특이성능을 갖는 치트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것

그런걸 생각하다보니 나만의 디자인과 재료로 탁구채를 만들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일단 탁구채 규정을 보니, 모양의 제한은 없고, 85%가 순수나무이고 이상물질이 들어가는 경우 두께는 0.35 mm이하의 것을 넣을 수는 있다. 접착제는 speed glue 논란 때문에 volatile한 용매는 사용할 수 없다.
러버스폰지는 공인 받은 넘버가 있는 놈만 붙일 수 있으므로, 첨에 고무장갑 잘라 붙이려던 꿈은 안드로메다로 넘어갔다.
결국 만들 수 있는 것은 블레이드 뿐.

블레이드의 재료는 예전 펜홀더 시절은 히노끼 통판을 최고로 쳐주었으나, 양면에 러버를 붙여야하는 쉐이크핸드로 넘어온 현대에서는 적정강도를 갖는 두께의 히노끼로는 두께가 너무 두꺼워져버린다. (약 9 mm에 4미리씩 양면 붙이면 17 미리...이건 너무해)
거기다 85g-90g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재료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대부분 얇게 강도가 나오는 합판을 쓰고, 탄성을 더하기 위해 안쪽에 카본파이버층을 얇게 넣기도 하는 추세이다.
 
내 짧은 목공인생에 합판은 저질 사파. 써서는 안되는 재료란 생각이 도미넌트하고(실제 탁구 블레이드의 합판은 기술력의 총합이라 이런 오해는 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사람은 판단에 있어서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성적 존재라 괜히 합판이 싫은 것은 어쩔수 없어;;)
그리고 탄소합판의 경우 공이 짱짱 잘튕기기는 하지만 기교위주의 탁구를 하는데는 걸어밀기에 별로 좋은 특성은 아니다.
난 운동으로 탁구를 칠 생각이니 툭툭 치는 것보단 스핀걸기 위주로 할 생각이라 통판쪽에 마음이 쏠렸다.  

따로 나무판 골라 살만한 시간과 돈도 아까와서 그냥 집에 있는 쪼가리들 중에 괜찮을게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상감용으로 구해놓았던 흑단.
흑단은 최고의 밀도에 최고의 탄성을 갖는 목재이다.
문제는 무게. 분명히 이걸로 통판을 만들면 100그람은 가볍게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운동이니 그깟 몇 그람 웨이트 트레이닝하는 셈치고 초반에는 스윙라켓 자세잡는 것으로 근육강화하지 뭐...
라고 무게를 무시하고 넘어갔다(이후 이것으로 큰코 다친다.)

프롤로그가 길어져서 제작기는 담부터. 

by SvaraDeva | 2014/07/30 08:10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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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lchemist at 2014/07/30 08:23

제목 : 자작 탁구채 (흑단 블레이드) 만들기-제작기 긔 1
자작 탁구채 (흑단 블레이드) 만들기-프롤로그에 이어서... 맘을 먹고 바로 담주부터 탁구 렛스을 시작할 기세로 주말내내 만들어 완성을 하기로 했다. 일단 귀찮으니 메모렌덤으로 제작 사진이나 주르륵. 설명은 나중에 시간날 때 올려야겠다. 간만에 새벽에 잠 덜깬 채로 톱질하다가 바로 손을 썰어버려서(전에 끌로 나가서 수지접합받았던 왼손 중지. 네가 동네북이로구나 고생이 많아), 한여름에 계속 땀차는 라택스 장갑끼고 퉁퉁 뿔은 손으로......more

Commented by 아슐리 at 2014/08/01 08:10
와. 애초에 탁구채 만들 재료로 흑단이니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놀랍고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첨에 탁구채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흔히 보는 그런 - 그런 걸 합판이라고 하는군요; - 그런 저렴 스타일 밖에 떠오르질 않는데 말여요. 흑단이란 걸로 하니 문외한이 보기에도 깜짝 놀랄 만큼 화악 고급스러워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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