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어의 플래그쉽 이어폰 SE846

충동구매에 관한 이야기.

이 날은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이 많았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가 부탁해서 취업 추천서를 써주었었는데, 스위스에 취직하면서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하면 내 추천서의 명문장(?) 추천을 얻을 수 있었냐고 하면서, 관련 내용을 많이 물어봐 준 덕분에 문제없이 매니저로 합격할 수 있었다고 감사 메일이 왔었다.
그 담에 온 메일은 뇌과학 분야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저널에 게재승인 되었던 논문이 표지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후에 서울과학고에서 세계뇌주간 행사인가 해서 강연을 했었는데, 거기 오셨던 서울대 의대 교수님이 그 저널 표지논문 되기 정말 어려운데,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
강연을 하고 다시 한 번 느낀 것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교수들 보다 고등학생이 더 낫다. 얼마전부터 어떤 새로운 개념을 발명해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다니고 있는데, 십수번 강연하면서 느낀 것이 교수들은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개념과 헛갈려서 새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 듣고나서 고개 끄덕이더니 나중에 이거 맞죠? 하는 질문을 보면 전혀 헛소리들을 하고 있더라는. 하지만 엊그제 서울과고학생들은 강연이 끝난 후 구름처럼 몰려와서 이것 저것 질문하는데, 개중에 몇 명은 거의 완전히 알아들어서 놀랐다. 

암튼 이어폰 이야기로 넘어와서. 

얼마전부터 갑자기 Balanced Armature 드라이버에 빠져서 몇 가지 인이어모니터를 디자인도 해보고 내가 음공명 설계를 해서 만들어볼까 상상의 나래를 펴던 중,
슈어에서 새 플래그쉽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검색을 해봤는데,
저음부의 우퍼관을 스텐레스판을 미로처럼 파서 좁은 공간안에 무려 10센티의 통로를 내게 만들어놨다는 구조에 완전 매료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음은 다이나믹 드라이버와 하이브리드 시키지 않으면 BA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작 내가 물건을 사게 된다면 AKG의 K3003을 사야지. 하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어차피 난 난청이라 이어폰 헤드폰 같은 것 가리는 편은 아니었고... 돈주고 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출장이 끝나고 음악을 들으면서 역으로 가고 있는데, 쓰고있던 제이버드 블루투스 이어폰이 좀 시간이 오래되니까 실리콘팁이 자꾸 빠져서 따로 놀더니 이제 덜렁덜렁 소리가 개객거린다.

거기다 갑자기 찾아온 폭풍ㅅㅅ로 화장실을 가기위해 들른 교보문고에서 열차시간 기다리며 이것 저것 보다가, 핫트랙스에 발걸음이 다달았는데, 여러가지 음향기기의 청음이 가능했다.
물론 주변이 시끄럽고 좁아서 제대로 음향기기의 청음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처음보는 것들이 있어서 꽤 신선했다.
특히, 잘나가던 아이리버가 스마트폰의 MP3 협공으로 망하기 직전에 고급화 전략으로 내논 아스텔앤컨 라인의 최신작 AK240도 볼 수 있었다. 달려있던 젠하이저 하이엔드급 헤드폰으로 들어봤는데, 글쎄...난 잘...
물론 안에 들어있는 음원도 MQS 급이겠지만, 뭔가 벨런스가 잘 안맞은 느낌이랄까.

구경이나 해볼까하고 원래 노리던 K3003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AKG 가 무슨 일인지 얼마전부터 핫트랙스에서 싹다 물건을 뺏단다.
어차피 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냥 블루투스 스피커 몇 개 돌아보다 발걸음을 돌리는데,
제이버드가 귀에서 툭 떨어진다.
아 이거 없으면 또 기차타고 내려가면서 소음에 시달려야할텐데 생각이 들어서, 암거나 귀를 막을거 하나 사자라고 해서 달라고 한게, SE846이다. 많은 귀마개 중 이걸 고른 이유는 그 길고 긴 저음우퍼의 미로구조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크긴 했지.

투명하고 덩어리가 커서 보청기 같은 외관이다. 회사에서 끼고 있으니 모두가 이어폰 바뀐걸 알아볼 정도로 크다. 여자 귀에는 잘 안맞을 듯.

암튼 열차 좌석에 앉자마자 뜯어서...
중국산 답게 허술한 내용품에 비해 빡스만 거대하고 무겁더만,
박스 속의 보증서와 설명서만 챙기고, 거추장스럽고 부피있는 빡스는 열차에 사뿐히 버렸다.

그리고 바로 꺼내 착용. 귀에 잘 안들어가는 느낌이라 사진기로 찍어서 살펴봄.
팁이 귀 밖으로 튀어나왔다.

뭔가 폼을 더 눌러서 집어넣고 10초 정도 잡고 있어야, 폼이 늘어나면서 이도 바깥으로 밀려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커넥터부분의 기저부분 선에 철사가 들어가 있어서 귀 위로 말아 휘어 고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귀 뒤로 말아 휘어서 목 앞이나 뒤로 신치를 땡겨줘야 제대로 고정이 된다.
근데 안경에 걸려서 완전 돌려당길 수가 없다. 앞으로 당기면 목이 졸리고...
 

그렇게 집에 와서는 찝찝한 중국제 폼팁을 비눗물에 닦아 사용하려는데, 아 정말 너무 빡빡하다.
인터넷 찾아보니 슈어 총알폼팁 빼다 팁 찢어먹은사람, 이어폰 연결부 부러뜨려 뽀갠 사람 등등 다양한 경험담(?)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중국제 치고는 비교적 마무리가 괜찮았다.
디자인이 여기저기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듯.
일단 폼팁의 표면을 매끄럼게 해서 이어왁스가 잘 안묻도록 되어있다.
좀 위생적인 것 같은 느낌이고.

앞에서 말했듯이 폼팁이 드럽게 안빠지는데...
이게 오히려 맨날 헐렁해서 휙휙 빠져서 날라다니는 소니나 보즈의 이어폰들보다 훨씬 났다.
도파관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빼다가 부러진 사람들도 있다는데,
이번 모델은 금속캐스팅으로 만들어서 부러질 염려가 적다.
고주파용 MMCX 잭과 플러그로 뱅글뱅글 돌아가도 접촉이 좋으며,
내부는 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전선도 트위스트와이어가 아니라 동축케이블을 쓴 느낌이다. 드라이버 자체의 임피던스도 높은 편이라 동축의 특성임피던스와 매칭하기도 쉽고,
트위스트 와이어보다 동축케이블이 임피던스를 유지하기가 좋아서 반사파 방지나 파워 전달에 유리하겠지..만,
뭐 주파수가 겨우 킬로헤르쯔대인데 파장대비 엄청 짧은 이딴 선에서는 별 상관 없을거다.

플러그 쪽엔 선명하게 Made in China 라고 자랑스럽게 찍혀있고,
본체와 다르게 더욱 차이나스런 볼륨 조정기가 붙을 수 있다.
볼륨 조정기는 그냥 가변저항이라 별로 사람들이 관심 없겠지만,
예를 들어 앰프 출력의 잡음이 일정하다고 하면, 잡음을 줄여 듣겠다고
기기 볼륨을 줄여도 잡음레벨은 똑같기 때문에 오히려 잡음이 도드라져 들리겠지.
이럴 때 기기 볼륨을 왕창 높여서 잡음 레벨보다 SNR을 왕창 올려놓고,
전체를 포텐쇼메터 방식의 저 허접 볼륨 조정기로 다 감쇠시키면,
음악은 적당하지만 SNR은 계속 유지되어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첨에 김광석의 다시듣기 앨범 오른쪽이 계속 지직지직 잡음이 나길래,
이 방법으로 줄여보려고 했으나...
효과가 없길래, 컴에서도 플레이해보고 한 결론은...
원래 레코딩 할 때부터 들어간 잡음이었다;;;; 이런건 어쩔 수 없지 킁.

음감은 썩 맘에 드는 편은 아니다.
보즈 이어폰과 비교해서, 확실히 저음은 거의 없다 싶다. 
보즈가 특히 궁궁궁 저음보강해서 심금을 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지만,
난 개인적으로 저음이 울리는게 매우 거북하기 때문에 오히려 저음이 없는 것을 선호한다.
그치만, SE846은 없어도 너무 없다.
거기다 드럼의 특정 사운드는 소위 깡통치는 소리가 난다.
이러다 보니 둥둥 울리는 저음이 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중음 고음 모두 뭔가 불투명한 한겹을 씌워놓은 것처럼
둔하게 난다.
맑고 청아한 소리를 원한다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물론 이어필터를 교환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혹자는 화이트 필터로 무필터 관을 장착하면 고음이 많이 좋아진다고는 하지만
글쎄...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

내 비록 난청이지만 청각기능은 이상이 없고 순전히 뇌에서의 청각피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봤을때,
어텐션이 동반된 상태에서의 청음 능력이 아주 후지지는 않을 것이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청각에 의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은 꽤 해볼만한 일인 것 같다.

이놈을 쓰다보니 새롭게 디자인 아이디어가 생겼다.
BA로 제대로된 저음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니,
조만간 한 번 최고의 이어폰을 만들어서 이 중국산 플레그쉽을 눌러줄테다.


  



by SvaraDeva | 2014/03/18 14:25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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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3/1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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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3/19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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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3/1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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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3/19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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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진똑바로찍어 ㅡㅡ at 2016/04/20 12:21
발로찍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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